주제는? 그건 소재고. 바다를 통해 니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. 그럼 왜 그렸어. ……바다를 물감 팍팍 써가며 거칠게 그린 이유는? 태왁이 열 한 개니까 해녀 열 한 명이 바닷 속에 있겠네? 고통스럽게 숨을 참으며 맨몸으로 거친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해녀들이? 물론 계산하고 그린 건 아닐 테지. 넌 별 생각 없이 그렸을지도 모르지만, 너의 감각은 달라. 이미 너의 그림은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있는 거다. 그럼 좀 더 본격적으로 말을 걸어볼까? (브로마이드를 펼쳐 보이는 충섭. 경복궁에서 개최되는 <고교 미술 경연대회> 포스터) 입상자 열 명은 미대 수시 지원도 가능하고, 전시회도…… 이유는? 왜? 질까봐? 심사위원에 대한 불신? 경쟁사회에 대한 불만? 왜 싫어? 그 마음이란 게 뭔데? 그럼 이런 마음은 어때? (캐비닛 문을 여는 충섭, 말린 나물들, 각종 술, 음료수, 말린 해산물 등이 가득하다) 자격이 안돼는 손녀딸을 받아달라고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마음? 그림 좀 가르쳐 달라고 어깨가 빠지도록 조공을 나르는 마음? 이 세상에 널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지. (한숨을 쉬며 그림을 주워든다) 애가 던지는 걸 좋아하네. 야구를 시켜야 하나.